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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일본, 158분
영어 제목 : Noriko's Dinner Table

감 독 : 소노 시온(園子温)
각 본 : 소노 시온(園子温)
 
출 연 : 미츠이시 켄(光石研)
          후키이시 카즈에(吹石一恵)
          츠구미(つぐみ)
          요시타카 유리코(吉高由里子)  
          후루야 우사마루(古屋兎丸)
          미츠야 요코(三津谷葉子)
          나미키 시로(並樹史朗)
          테즈카 토오루(手塚とおる)

음 악 : 하세가와 토모키(長谷川智樹)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머리가 띵 하고 다 보고 한 참 후엔 그냥 분위기만 기억에 남는 소노 시온의 영화세계를 다시 한 번 맛 볼 수 있는 작품. 2시간 40분에 육박하는 런닝타임이 주는 압박감으로 계속 보기를 미루다가 결국 다 보긴 했지만 역시 조금 울컥 ..개운치 않다.

우울하면서 외로운 그러면서도 고지식한 자기만의 세계에 갖힌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개인사가 꽤 답답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동경의 대학에 가고싶은 노리코에게 아버지는 동경의 대학이란 처녀가 아이를 가지기에 딱 좋은 곳이라면 가로막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살아도 좁은 도시의 답답함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뭔가 성인의 여성이 가지고 있는 독립성이 부족하다고 느낀 노리코는 폐인닷컴을 통해서 자신의 일상의 공유해주던 쿠미코를 만나 동경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버림받은 쿠미코의 꾸며진 인생 속으로 들어간 노리코. 답답한 소도시인 고향에서 벗어났지만 거짓인생이라는 새로운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노리코..

언니가 가출을 하고 난 이후  언니의 발자취를 따라 페인닷컴에 탐닉하는 유카, 역시 언니를 따라 페인닷컴의 우에노 54를 따라서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또 다른 가식의 생활 속으로 빠져든다. 권위적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아빠와 엄마를 뒤로 하고 서로 따뜻하게 웃음을 나누고 살아가는 가족. 가식이라는 허울을 지고 있지만 그저 따뜻해 보이는 상상 속의 가족 안으로 들어가면서 노리코는 자신이 생각하는 꿈의 인간 미츠코가 되어간다. 리얼 라이프를 버리고 얻은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노리코다. 어느새 그런 언니의 생활 안으로 함께 들어와 있는 유카. 노리코와 유카는 서로가 자매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타인이 되어 한 곳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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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의 가출을 지켜본 아버지는 페인닷컴의 수장이라 해도 의심치 못할 폐인에 가까운 삶을 갈아가고 있다. 자신 스스로가 가부장적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평범한 행복함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왜 딸들이 자신을 버렸는지를 고민 할 수록 공황 속으로 빠져든다. 아버지는 생업을 접고 두 딸아이를 찾아 나서고, 엄마는 두 딸아이의 자살이 자기 잘못이라고 비관하면서 자살하게 된다. 두 딸아이의 메모와 흔적을 찾다가 두 딸 아이가 렌탈 가족 일을 하고 있고, 쿠미코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살을 위한 과도기적인 과정 안에 놓여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렌탈 가족의 고객으로 위장한 아빠는 두 딸아이가 스스로 자매인지도 모르고 자매 연기를 하는 모습에 기겁을 하고 함께 연기에 빠져있는 노리코, 유카, 쿠미모..아버지 까지 모두 정신줄 놓은 듯한 면모를 폭발하면서 영화는 핏빛 식탁의 진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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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영화의 내용을 생각하는 내내 이게 무슨 영화인가..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하지만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답답하고 깝깝해 지는 것이 영 기분이 꾸리꾸리해지는 영화...

하지만 예전에 본 소노 시온의 영화 <기묘한 서커스>처럼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소노 시온의 우울함은 정말이지 끌리느냐 밀어내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보는 이의 몫인 게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한없이 밀어내고 싶은 텍스트인데..기회가 된다면 그의 영화는 다시는 찾아서 보고 싶지 않다. 핏빛 넘치는 식탁 안에서 느껴지는 따로 따로의 가족들..사진 속에서는 웃고 있지만 무언가 서로 소통 되거나 동감하지 못하는 가족들...자신의 미래와 아름다움과는 상관없이 목숨을 던지는 소녀들과 그들을 조종하고 독려하는 컴퓨터와 어른들..어디 하나 권할 만한 소재라는 건 찾기 힘든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생각하고 소회해야 할지 영영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인생은 전쟁과 전투를 오가면서 치열하게 주어지는 것이 맞지만 그것에 대한 절대적인 승리를 쥘 수 있는 것이 죽음을 스스로 맞이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러한 판단조차 명확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그것을 독려하는 어른들이란 얼마나 기괴한가. 한 가족의 파괴를 통해서 일본의 우울한 미래를 되짚어 보는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전해주는 꽤 많이 찝찝해 지는 영화..왜 이 영화가 관객들이 좋다고 뽑았을까..아 난 정말 아이러니컬하다. 알 수 없는 그 관객들에 비켜 있는 나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란..아 나도 나이가 들고 이른바 기성세개가 되어 가는 것이구나라고까지 생각하니 심하게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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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life 2009. 2. 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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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3M, Color

감 독 : 코야마 세이지로(神山征二郎)
각 본 : 신도 카네토(新藤兼人)
원 작 : 이츠키 히로유키(五木寛之)
음 악 : 이시카와 히카루(石川光)
         
카코 타카시(加古隆)

출 연 : 야스다 나루미(安田成美)
          와타베 아츠로(渡部篤郎)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Sergei Nakariakov)
          미쿠니 렌타로(三國連太郎)
          바이쇼 미츠코(倍賞美津子)  
          미나미노 요코(南野陽子)
          야마모토 케이(山本圭)
          마부치 하루코(馬渕晴子)  
          하시모토 사토시(橋本さとし)
          타야마 료세이(田山涼成)
          이누즈카 히로시(犬塚弘)   
          나미키 시로(並樹史朗)   
          이토 루나(伊藤留奈)                          와타나베 미에(渡辺美恵)   
          니시자와 히토시(西沢仁)   
                                                                                     
일본의 많은 문예물 안에는 일본인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의식의 일면엔 상처처럼 각인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과거사를 통해 침략 전쟁의 선두에 서 있었던 국가적 전력 덕분에 과다한 피해의식에 의한 패배주의적 시각이나 혹은 안하무인격의 우경화 캐릭터들이 종종 등장하고 하는데..이 영화에서도 그런 전장의 파편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기존에 보아왔던 태평양 전쟁이 아니라 러일 전쟁이라는 점이 조금 신선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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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에서 인테리어 샵에서 일을 하는 유키코는 우연히 실력있는 트럼펫 연주자 니콜라이를 만난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사랑에 속아 자살하고..가게도 폐업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다. 어릴적 친구인 쇼지와 혼담이 오가지만 동경에서 만난 니콜라이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간암 판명을 받은 아버지는 수술을 거부하고..그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러일 전쟁의 추억이 니콜라이와의 만남을 특별하게 만든다. 니콜라이는 유키코의 초대로 지역의 오케스트라 단원에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시험에 합격하지만, 비자 만기로 외국인 출입국에 의해 다시 러시아로 송환된다. 니콜라이는 떠나고 그런 자신의 마음 상태까지 다 알고 있는 쇼지지만 유키코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니콜라이의 러시아 송환 이후에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쇼지와 함께 모스크바로 떠나는 유키코...모스크바의 작은 마을에서 이미 애인과 결혼 생활에 접어든 니콜라이의 모습에서  유키코는 니콜라이에 대한 미련을 떨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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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청춘(이라고 하기엔 여주인공이 조금 나이 들어보였지만...)..좁은 마을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방황..결혼과 배우자에 대한 선택과 아버지의 죽음 사이에 러시아 인의 트럼펫이 또 다른 주인공이 되어 그려지는 단순한 드라마..특별한 줄거리도..틀별한 감동이나 재미도 없다. 같은 제목의 소설이 나와 있으니 기존의 원전을 어떻게 그린 것인지 정도가 조금 궁금할 뿐이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음악이 트럼펫의 선율에 의해 영화 속에 녹아 들 때는 전쟁의 아픔이나 상처도, 사람의 몸에서 기생해서 그 몸을 상하게 하는 암과 싸워야 하는 상처도, 사랑을 확신할 수 없지만...상대방의 마음은 더욱 더 모르는 사랑의 상처까지도 자신의 몸을 늘어 뜨리는 그날 까지 온갖 상처 안에 갖혀 있는게 인간의 삶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서 든다. 영화는 조금 지루한 면도 지니고 있고 고루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인생이 상처라는 걸 안다면..그걸로 이 영화를 보는 미덕의 아주 큰 부분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큰 강의 한 방울과 같은 상처들이 모여서 큰 강(궂이 볼가 강이 아니더래도)이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상처 없이 늙어가는 것이 어디 있으랴 !!
by kinolife 2007. 6. 1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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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 : Jubaku: Spellbound
1999년, 115분, Color
감 독 :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각 본 : 타카스기 료(高杉良)
          스즈키 사토루(鈴木智)
          키노시타 무기타(木下麦太)
원 작 : 타카스기 료(高杉良)

출 연 : 야쿠쇼 코지(役所廣司)
          나카다이 테츠야(仲代達矢)
          시이나 킷페이(椎名桔平)
          야지마 겐이치(矢島建一)
          나카무라 이쿠지(中村育二)
          와카무라 마유미(若村麻由美)
          후부키 준(風吹ジュン) 
          타키가와 유미(多岐川裕美)
          네즈 진파치(根津甚八)
          사토 케이(佐藤慶)
          이시바시 렌지(石橋蓮司)
          엔도 켄이치(遠藤憲一)
          모타이 마사코(もたいまさこ)
          혼다 히로타로(本田博太郎)
          우메노 야스키요(梅野泰靖)
          코바야시 카츠히코(小林勝彦)  
          야마모토 키요시(山本清)
          카츠베 노부유키(勝部演之)
          와카마츠 타케시(若松武史)
          쿠로키 히토미(黒木瞳)
          나이토 타케토시(内藤武敏)  
          야마사키 세이스케(山崎清介)  
          오오타카 히로오(大高洋夫)  
          오오니시 토모코(大西智子)  
          키노시타 호우카(木下ほうか)  
          키시 히로유키(岸博之)  
          타구치 토모로오(田口トモロヲ)  
          무라카미 준(村上淳)  
          모토미야 야스카제(本宮泰風)  
          타카스기 료(高杉良)  
          유진(遊人)  
          코모토 쿄이치(古本恭一)  
          이마이 아즈사(今井あずさ)  
          오오시로 에이지(大城英司)  
          다이몬 슈조(大門修三)  
          나카무라 료(中村亮)  
          우메자와 켄스케(梅沢健祐)  
          나미키 시로(並樹史朗)  
          타테 고타(殺陣剛太)  
          이노우에 하지메(井上肇)  
          미즈카미 류시(水上竜士)  
          미츠오카 유타로(光岡湧太郎)  
          카토 미츠루(加藤満)  
          아오키 테츠진(青木鉄仁)  
          요시이에 아키히토(吉家明仁)  
          혼고 겐(本郷弦)  
          미우라 하루마(三浦春馬)  
          오오타니 레이나(大谷玲凪)  
          마치다 마사노리(町田政則)  
          요시자키 노리코(吉崎典子)

음 악 : 카와사키 마사히로(川崎真弘)

언젠가 우리 나라에서 일본을 비방하는, 아니 일본의 속을 들여다본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단점들으 재미삼아 씹던 때가 있었다. 전여옥의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에서부터 시작된 일본의 단점 헤집기는 그 비슷한 소재를 다룬 수십권의 책들이 출판되면서 논쟁의 소재과 되고 서점가에서는 유행의 정점이 된 것이었다.

그 이후, 2001년 봄에는 일본 스스로가 그런 소재를 가지고 쓴 소설이 모티브가 된 영화 한편을 국내 극장에서 만날 수가 있다. 소설을 쓰기만 하면 서점가를 긴장시킨다는 미국의 소설가 존 그리샴처럼 일본의 서점가를 들뜨게 하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다카스키 료(高杉 良). 그의 소설 [금융부식열도]는 출간되자마자 출판사의 예측대로 빅 히트를 기록하며 서점가를 휩쓸고 뒤이어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제목하여 <쥬바쿠:금융부식열도> .

영화 <주바쿠>를 만든 하라다 마사토 감독은 <카미가제 택시><바운스>등을 통해 일본의 부폐를 소재로 수준 높은 상업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이다. <카미가제 택시>가  일본의 과거 정치계의 부폐를 다루고 있다면 영화 <바운스>는 일본의 십대들을 통해 현재 일본 성문화의 실태와 어른들의 비뚤어진 인생관을 비꼬고 있는 작품이. 그래서 1999년에 그가 선보인 영화 <쥬바쿠-금융부식열도>는 일본의 금융계의 비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니 그의 날카로운 영화감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주바쿠> 역시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사실감을 놓지치는 않는다. 금융계와 정치, 그리고 이들과 연결고리를 놓고 있지 않는 야쿠자의 공포까지 영화 곳곳에는 부폐의 연결고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물론 전작에 비해 긴장감이나 문학적 혹은 영화적인 드라마 전개는 지루함이라는 또 다른 복병 앞에서 쓰러져 안따까운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야큐쇼 코지와의 작업을 통한 균형을 깨트리지 않는 미덕만은 챙긴다. 평범한 은행원으로 출연한 야큐쇼 코지는 하라다 마사토의 영화에서는 평범함에서 시작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등장했는데 이번 영화 역시 그의 영화에 걸맞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바쿠(JUBAKU)'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나 신비로운 힘에 사로잡힌다는 뜻을 가진 단어, 그렇다면 영화 속의 주인공인 기타노(야큐쇼 코지)는 금융계 내에서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어떠한 틀 속의 비리에 연루된다는 뜻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보기 전에 이미 제목에서 부터 음모와 암투라는 영화적인 흥미는 충분히 안고 있는 셈이 되며 그 암투가 어떤 결말을 향해 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관객의 또 다른 즐거움일 테다.

일본의 거대함, 그 속에서 최고의 금융계 속에 걸린 덫, 어느 자본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불법대출과 이에 따르는 해당 은행의 공신력 추락과 은행자체 존립에 대한 불안 등은 영화의 기초적인 문법에 해당되는 영화적인 존재이며, 그 사실을 모르는 은행원들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부폐에 경악하는 것은 영화의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부폐의 시작이 자신이 믿고 있던 선배며 동료였으며, 그도 아닌 이들은 자신의 허물도 모른채 하루하루를 살던 바보에 불과했다는 점은 영화의 철학과 닿아있기도 하다. 부폐를 만드는 자, 알면서도 묵과하는 자, 무엇이 부폐였는지도 인식 못하는 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이를 변화시키려는 자, 영화 속의 사람들은 각각의 선택적인 방향 앞에서 쉽게 방관자과 되고 그래서 또 쉽게 패배자가 되는 단계에 대해 철저히 냉정한 시선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영화 <주바쿠>속에서의 악은 강하지 못한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정서이며, 이는 곳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울한 잔상을 남긴다. 이 영화 속에서도 소재가 단지 금융계이지 악과 선의 기준이 바뀐다거나 인생이 변화한다거나 하는 큰 변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전의 영화에 비해 <주바쿠> 안에서 그가 지적하고 있는 ‘악’의 실체가 깊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아따까움까지 엄습한다. 마치 녹이 쓴 펜으로 옛날 이야기를 끄적이듯 충격적이지도, 새롭지도 않게 이야기와 우인공들의 무대만 옮겨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에 있었다는 금융계의 부폐를 실제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영화속의 재미에만 의존해 이 영화를 평가해볼 때 그저그런, 그냥 실패한 상업영화 쯤으로 보이게 한다는 거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단지 그가 건드리고 있는 소재가 다큐멘터리적인 그의 카메라에 의해 진지한듯 보일 뿐, 영화적인 재미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현재 일본의 문제가 영화 속에서 재미가 된다니….마치 이런 문구를 암시하는 듯. '우리 모두는 썩어가도 영화는 만들거다. 그것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사회는 썩어가도…영화는 만들어질 뿐이지', 일본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사회 속의 악이 들춰진다는 점에서 조금은 씁쓸함을 느낀다. 아! 누구는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반복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쓸쓸함의 근저에는 다른 어떤 구체적인 이유보다도,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욱 더 커지는 것 같다.  

by kinolife 2006. 10. 14. 21:48

제 작 : 후지TV
방 영 : 2002년 1월-3월
감 독 : 와카마츠 세츠로(若松節朗)
         무라카미 마사노리(村上正典)
각 본 : 아이자와 토모코(相澤友子)
음 악 : 스미토모 노리히토(住友紀人)
출 연 : 후카츠 에리(深津繪里), 츠츠미 신이치(堤眞一)
          야다 아키코(矢田亞希子),사카구치 켄지(坂口憲二)
          니시무라 마사히코(西村雅彦),네코제 츠바키(猫背椿)
          쿠가 요코(久我陽子),스가와라 토시미(菅原禄弥)
          시가 코타로(志賀廣太郎),코다마 키요시(児玉清)
          오오사와 케이스케(大沢恵介), 사노 타카시(佐野崇) 
시미즈 유코(清水優子), 히로사와 미키(広沢味希)  
타니하라 쇼스케(谷原章介), 토네사쿠 토시히데(東根作寿英)
한카이 카즈아키(半海一晃), 나미키 시로(並樹史朗)  
 타카스기 코다이(高杉航大), 오오바야시 타케시(大林丈史)  
하세가와 하츠노리([長谷川初範), 노구치 마사히로(野口雅弘)  
시다 마사유키(信太昌之),후루고리 마사히로(古郡雅浩)  
시마오 야스시(嶋尾康史),나카고메 사치코([中込佐知子)  
카네코 타카토시([金子貴俊),타케이 히데노리(武井秀哲)  
키카와다 마사야(黄川田将也),오시키리 모에(押切もえ)  
오오츠카 마에(大塚麻恵),나스 마사에(那須正江)  
카와구치 노리코(川口典子),아키모토 마유미(秋元真由美)    

주제곡: キラキラ(반짝 반짝) - 오다 카즈마사(小田和正)

"이 세상에 태어나 30년하고 6개월 19일...
더이상 사랑 따윈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도 사랑은 다시 찾아왔다..."

어느 평범한 여자의 일기에서 읽을 수 있을 듯한 이 독백에서 시작되는 드라마 [사랑의 힘]은 여자에게 있어 인생에 있어서 일이나 남자라는 문제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까 하는 문제를 아주 담담하면서도 소박하게 풀어낸 수작 드라마다. 더군다나 주인공을 맡은 후까츠 에리의 극중 나이가 30이니까 말 그대로 일본판 브리짓 존스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브리짓 보다는 보다 감정이입이 잘 되는 캐릭터다. 일본의 특수적인 상황인 듯 보이는 몇몇 장면이 부담스럽지도 하지만, 그녀의 기본적인 캐릭터는 정말이지 평범하면서 소박해서 생각하면 할 수록 그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들기 쉽다.

주인공 코모미야 토코는 아주 큰 광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스무살 때 자신이 꿈꿔왔던 광고일과는 거리가 멀다. 사무실에서는 뮤료하게 졸음을 쫓기에 바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핀잔을 듣는 게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말그대로 할일 없는 노처녀의 평범한 일상이 직장이라고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유일한 인생의 위로라면 회사 동료인 스다와 금요일이 오면 즐겨가는 와인바에서 각각 한병씩의 와인 앞에서 자신의 주량을 확인하는 일 뿐이다. 홀로인 노처녀들에게 잘 익은 와인과 맛있는 치즈케익은 그야말로 입만이라도 즐거울 수 있는 친구가 아닐 수 없다. 게으름과 무료함 그리고 와인과 치즈....이 별 일 없는 일상은 반복의 되풀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그녀에게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 그 기회가 일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지만,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그것이 두가지 모두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진행방식이 자연스러워 결코 식상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 변화의 시작은 누구나 처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혹은 자신의 잃어버린 열정과 만날 때와 같은데, 코모미야는 예전 자신의 그 꿈과 만나게 되는 광고계의 이단아 누쿠이와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서 다시 인생의 열기와 대면하게 된다. 물론 함께 일하는 소고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코모미야는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의 무료한 삶에다 안녕을 하고 난 다음이니 말이다. 실수를 인정하듯 누쿠이 기획은 이제 코모미야에게 일과 밥을 주어야 한다. 그녀가 눌러앉아버렸으니....

비록 코모미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전화를 받고, 줄광고 일을 맞는 일이지만, 이전에 자신의 꿈에 탄력을 받게 해준 누쿠이의 광고에 대한 열정을 지켜보는 것은 작은 월급이나 유명한 회사에 다니지 않은 불영예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은 가난한 마음에, 솔직한 가슴에 그리고 자신 스스로를 낮추어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혼자서 오랜동안 동경인지 연모인지를 모르고 키워온 마음은 자신의 예전 남자친구의 여동생과 누쿠이가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어찌보면 동경이었음을 스스로 느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함께 일을 하면서 함께 얼굴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어려운 일을 헤쳐나간 이들에겐 스스로도 모르는 우정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코모미야의 마음이야 동경과 연모를 오간다지만, 함께 일하면서 옆에서 보는 코모미야는 연애의 상대라고는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 캐릭터, 말 그대로, 생긴 것과는 상관없이 연애 감정 이전에 우정이 생겨버리는 만인의 연인이자 친구이다. 물론 드라마 속의 누쿠이는 그저 말썽장이로 보이겠지만, 드라마 후반부로 갈 수록 자신 스스로도 모르게 정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를 그대로 내 보인 자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란 있을 땐 몰라도 사라지만 가장 섭섭한 존재라는 것이다. 누쿠이는 자신도 모르는 감정을 코모이야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고, 코모미야는 자신의 옛애인의 청혼을 거절하게 되면서 자신이 누쿠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드라마는 역시 예상대로 누쿠이와 코모미야의 러브 스토리에 대한 종결점을 향해가는 이야기이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코모미야 역을 맡은 후카츠 에리의 캐릭터와 그녀의 연기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사실적이면서도 소박한 묘사다. 우리나라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연인이라면 흔히 운명적이며, 그 운명의 사랑 옆에 있는 그 누구의 노력도 헛된 것으로 비치면서 그 사랑을 견고하게 하지만, 이 드라마 속의 사랑은 생활 속에 묻어나 있으면서도 누구나 있을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전해줘서 더 감정이입이 되곤 한다. 정말 이 드라마 속의 연인들 처럼 11번의 커피 리필은 없었지만, 헤어지기가 힘들어 서로의 버스 정류장과 집을 왔다 갔다 한 경험, 전화를 끊기 위해 끊어 안 끊어를 반복해 본 경험 등등이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와 닿는 내용들이 운명이 아닌 생활속의 범인들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 속의 여자친구와의 끊임없는 음주작태 역시 많이 해 보던 일 같고, 그것도 병채 나발의 보는 그녀들의 모습이란....웃습지도 않은 나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재미는 물론이지만 그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는 서른 초입의 나의 후배들에 권해주고 싶은 드라마인데, 사랑은 드닷없이 온다는 이야기... 그래서 신비하지만 그 안에 이상한 운명같은 것이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그냥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준다.

-드라마 속 명대사-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여자에게 매력 못 느끼는 법이야
일이 힘들다고 해서 남자에게 먹여 살려달라고 하다니..
결혼으로 도망치면, 재미없지
그리고 결혼해도 마찬가지야 후회하는 녀석은
어떤 답을 고를지라도
결국 후회하기 마련이야


정말로 광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구나 라고..
만드는 것에 대한 마음만은
순수하구나 라고 느껴져서..조금 부러웠어요


8년 동안의 추억은 몇 년이 지나야 없어지는 걸까요?
순식간이야
잊고싶지 않아도 추억은 점점 없어져
그러니깐 기억하고 있는 동안 소중히 간직해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야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야

30살 생일이 온 뒤에는 더 이상 사랑하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사랑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진심으로.. 괴로워질 정도로
괴로워질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만으로도..행복했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가장 사랑할 때 더나고 싶은 유혹도 가장 큰 법이다. 그것은 자기만의 추억을 가지고 싶은 유혹과 욕심에 다름 아니다.

Tip : 내가 이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쓴 것이 2005년 1월...그러니까 1년 반이 훨씬 지나버렸다.
      그리고 올해 한국에서 이 드마라를 각색한 드라마가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개인적으로 괜찮게 생각하는 배우 유준상이 나오길래 무언가 해서 봤더니 첫회에서 바로 이 드라마글 배낀건가? 이런 생각을 했다...드라마 끝 스크롤에 원작 표시가 되어 있길래 보니 리메이크였는데..후카츠 에리의 생활연기를 김민선이 따라가기엔 아주 많이 역부족...아무튼 매회 시청률에 연연하는 우리 드라마의 현실이 안타깝다.


by kinolife 2006. 7. 1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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